어릴 때
어린시절 이야기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23년 지금의 나는 27살이다.
그 때의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다.
우리반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연극으로 풀어나가는 연극독후감을 했었다.
우리가 읽은 책은 몽실언니
연극의 컨셉은 재판이였다.
책의 주인공과 주변인물들이 원고, 피고, 증인이 되고
주인공과 주변인물들간의 잘잘못을 책의 줄거리를 따라서 진행하며
결말을 이루는 연극이였다.
재판하면 떠오르는것은 당연히 변호사
다들 변호사 역할을 하고 싶었다.
나도 그랬다. 운이 좋은지 담임선생님이 나를 좋게 생각한건지
변호사 역할을 맡겨 주었다.
너무 좋았다. 멋있으니까.
열심히 연습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어느날 갑작스레 역할이 다른 친구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너무 슬펐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유는 외모 때문이 아니였을까
정확하게는 키.
초등학교 때 나는 키가 또래 남자애들에 비해 엄청 작았다.
친구들은 모두 훤칠한 변호사를 생각했다. 짜리몽땅 변호사보다 더 많이
선생님도 미안하셨는지 다른역할을 주셨다.
방언연기를 하는 주인공의 증인, 아저씨 역할이였다.
싫었다.
멋있는 변호사 역할을 못하게 되고, 투박한 방언까지 쓰는 아저씨 역할
싫었다.
나도 멋있는 변호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짜리몽땅한 것은 변함이 없었다.
복도 끝에 위치한 교실은 발코니가 있었다.
친구들은 종종 발코니에서 놀기도 했다.
연극을 준비하는 동안 친구들은 발코니에 자주 모여서 연습했다.
내가 변호사에서 아저씨가 된 그 날도
친구들은 발코니에서 연습하고 있었다.
변호사 역할을 맡은 친구와 함께 삼삼오오 모여서
부러웠다. 화가났다.
나는 결국 내 스스로를 견디지 못했다.
발코니의 문을 박차고 들어가며
연습을 하고 있던 친구들에게 소리쳤다.
말 그대로 악을 썻다.
발코니에 혼자 덩그러니 있으며 나를 견디고 있었다.
그 뒤에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날 저녁 아버지가 담임 선생님과 전화를 하는 장면만 기억이 난다.
이후에 담임선생님이 나와 면담을하며
나의 새로운 역할에 대해 칭찬과 격려를 해주던 기억이 난다.
'중요한 역할이다.'
'너 말고는 하지 못한다.'
'변호사 보다 특별하다.'
결국 나는 짜리몽땅 변호사가 되지 못했다.
연극도 방언 아저씨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래도 열심히 했는지
나중에 학교 신문에 잘했다고 내 이름까지 적으며 칭찬해줬다.
가끔은
가끔은 화가나고 억울하면 어리광을 피우고 소리지르는
어린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어린이라는 이유로 나를 봐주고 생각해줬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어른이 되었을 때는
그러지 못한다.
사실은 다들 그러고 싶지만 못하는것이 아닐까
때로는 심한 어리광을 피우고 싶기도 하다.
외모
이런일 때문에 나는 다른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사람은 각자의 사연이 있고 감정이 있다.
모두를 고려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배려는 할 수 있다.
조금씩만 이해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